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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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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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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김창복
최종 편집 일시
2026/01/3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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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톺아보기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생산 로봇을 현장에 못 들어오게 하겠다고 어느 노동조합이 선언한 것 같은데, 과거 공장에 증기기관, (방직)기계가 도입됐을 때도 그 기계를 부수자는 운동이 있었다”며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자동차 노조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생산 현장 투입 반대를 예시로 하여 인공지능(AI)발 사회 변화에 대한 적극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말한 '어느 노조'는 현대차그룹이 연초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상용화 계획을 발표하자 "노사 합의 없이 단 1대도 들어올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기계를 부수자는 운동'은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어닥친 19세기 초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을 의미한다. 러다이트 운동은 1770년대에서 1790년대까지, 1811년부터 1813년 까지, 1816년부터 1820년 까지의 기간, 50여 년간 간헐적으로 또는 격렬하게 이어져 온 ‘기계파괴운동’을 말한다. 이어, 이 대통령은 2000년대 전후 주산 학원들이 컴퓨터 학원과 PC방 등으로 대체된 사례를 거론하며 "생산수단을 가진 쪽이 엄청난 부를 축적할 텐데 대다수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 당장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어차피 올 세상이면 조금씩이라도 준비하고 대비해 놓아야 한다”면서 “최대한 빨리 인정하고 정부는 학습할 기회를 주고, 많은 사람이 AI를 도구로 사용해 생산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대통령의 진단의 방향은 대체로 맞는다고 보인다. 또한, 지금 시기 인간의 지적 노동의 영역까지 확산해 오는 AI로봇에 대한 우려와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금속노조는 곧바로 비판 성명을 냈다.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는 노동자의 안전, 작업 방식, 고용 안정에 대한 영향이 예상되기에 로봇 도입에 앞서 '협상'을 요구한 것"이라며 "노동조합이 하지도 않은 '21세기판 러다이트'로 왜곡됐다"고 했다. 금속노조는 이어 "흘러가는 수레를 그냥 두는 게 국가 역할인가"라며 "그 수레의 방향과 속도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산업 현장부터 쓰나미로 들이닥친다", "AI 판타지가 지배하는 이 사회는 숙고도 없이 산업 현장부터 로봇을 백방으로 투입하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대통령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정부는 이러한 금속노조의 주장도 귀 기울여 듣고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에 올바른 대응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거대한 수레’를 인간이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속도와 힘에 감탄하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말 것이기에 그렇다.
분명한 것은 19세기의 러다이트 운동이 기술 혐오 운동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운동이었다는 것이고, 단결금지법, 러다이트 탄압법 등, 군대와 법을 동원한 수많은 처형과 유배, 피의 탄압으로 이룩한 것이 영국의 산업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이 산업혁명이 종국에 제1, 2차의 세계전쟁을 불러왔다. 더욱이 기술적 발전과 혁신이 인간과 지구환경에 가중한 재앙의 결과는 현재와 미래의 인류문명의 불확실성과 잠재적 위험을 가중시킨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가 종국에 인류문명의 파괴와 재앙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눈앞에 있는 수익의 극대화에만 집착하여 기술문명에 열광하는 사회를 성찰하고 비판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전동차에 올라탄 채로는 차 밖의 하늘과 땅과 수많은 생명을 바로 볼 수 없는 법이다. AI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과 우려, 노조와 정부의 갈등 등의 현 상황이야말로, 19세기로부터 시작된 ‘러다이트 운동’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의 도입으로 높아진 생산성이 노동자에게는 생계를 위협하고 이익은 고스란히 자본가에게만 집중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계를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저항이었고, 기술 윤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최초의 집단적 문제 제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개념이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이다. 이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조절하고 사회적 안전망과 인간 중심 설계를 함께 고민하자는 문제의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묻고 다시 답해야 한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야 하는가?”